01 · 핵심 요약 · 90초
만기평가일 장 마감 직전 10분 동안 어떤 주식이 12만 8,000주 팔렸다. 그 매도로 종가가 상환 기준선 아래로 내려갔고, 그 주식에 연동된 상품에 돈을 넣은 사람들은 약속받은 원금과 이자를 받지 못했다. 판 쪽은 그 상품의 상환 재원을 관리하던 금융회사였다.
주가에 따라 원금과 이자가 달라지는 상품인 주가연계증권(ELS)은 미리 정한 평가일의 종가 하나로 상환 여부가 갈린다. 발행사와 거래 상대 금융회사는 상환에 쓸 돈을 미리 마련하기 위해 기초자산 주식을 사고판다. 2005년부터 2009년 사이, 평가일 장 마감 무렵 이들이 기초자산을 대량으로 팔아 종가가 상환 기준선 아래로 내려간 사례가 잇따랐다. 투자자들은 상환금을 달라며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어떤 사건에서는 정당한 위험회피 거래로, 다른 사건에서는 시세조종으로 판단했다. 상품을 만든 회사가 그 상품의 결과를 정하는 가격에 직접 관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 과정에서 드러났다.
대우증권이 2005년 3월 16일 발행한 ELS는 삼성SDI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삼았다. 2005년 11월 16일 중간평가일, 발행사는 장 마감 직전에 9만 8,190주를 팔았고 그중 9만 4,000주는 기준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낸 주문이었다. 조기상환은 무산됐다. 2009년 8월 26일 만기평가일에는 한국투자증권이 발행한 ELS의 기초자산인 KB금융 주식을 두고 거래 상대 은행이 오전 접속매매에서 8,182주, 오후에 14회에 걸쳐 10만 6,032주, 마감 직전 단일가매매 10분 동안 12만 8,000주를 팔았다. 기준가격은 7만 4,600원이었다. 두 사건 모두 종가는 기준가격 아래에서 결정됐고 상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대법원은 앞 사건에서 2015년 5월 14일, 뒤 사건에서 2016년 3월 24일 각각 투자자 쪽 손을 들어줬다. 형사 절차에서는 한 증권사 운용 직원이 벌금 1,000만원을 확정받았다.
같은 2016년 3월 24일, 대법원은 정반대 결론도 함께 냈다. BNP파리바은행 사건에서는 만기기준일 매도 물량이 그날 전체 거래량의 20%를 넘지 않아 한국거래소의 ELS 헤지거래 가이드라인 요건을 충족했다는 이유로 투자자가 패소했다. 같은 델타헤지라도 시점과 수량, 호가 방식에 따라 결론이 갈린다는 뜻이다. 이 기준은 지금도 그대로다. 2015년 7월 1일부터 자본시장법 제178조의2가 시행돼 시세조종에 이르지 않는 행위도 과징금으로 제재할 수 있게 됐지만, 평가일에 얼마까지 팔 수 있는지를 정한 법률상 상한은 없다. 누가 헤지를 운용하는지, 평가일에 얼마를 팔았는지도 투자자에게 공시되지 않는다. 개별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삼는 ELS는 지금도 발행되고 있다.
02 · 자세한 이야기
사건은 이렇게 전개됐다
약 9분03 · 금융구조
돈·정보·책임은 어떻게 움직였나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ELS를 판 회사가 왜 그 상품의 기초자산 주식을 직접 사고파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발행사가 상환 재원을 만든다
ELS를 발행하면 회사는 나중에 돌려줄 돈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기초자산 주식을 사고팔아 상품에서 지게 될 부담과 반대 방향의 손익을 만든다. 주가가 오르면 사고 내리면 파는 것이 기본 원리다.
→평가일이 가까우면 계산이 급격해진다
주가가 상환 기준가격 부근에 있을 때는 조건이 성취되는지에 따라 보유해야 할 주식 수가 크게 달라진다. 평가일이 다가올수록 그 차이가 커지고, 마감 무렵에 매도 물량이 몰릴 수 있다.
→종가가 상환 여부를 결정한다
상환 판단은 그날 종가 하나로 이뤄진다. 마감 직전 단일가매매 시간에 나온 대량 주문은 종가를 직접 움직인다.
→이익이 반대 방향으로 걸려 있다
조건이 성취되면 발행사는 상환금을 내줘야 하고 성취되지 않으면 내주지 않는다. 종가를 움직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쪽이 그 결과로 이익을 보는 쪽과 같다. 법원이 문제 삼은 지점이 여기다.
왜 이런 일이 가능했나
구조 자체가 이해상충을 만든다. 발행사는 위험을 관리할 의무가 있고 그 수단이 기초자산 매매다. 그런데 그 매매의 결과가 자기 상환 부담을 줄인다. 위험관리와 이익추구가 같은 행위로 겹친다.
판단 기준이 사후에만 작동한다. 대량 매도가 헤지인지 시세조종인지는 매도 시점과 수량, 호가 방식, 며칠 전부터 분산해 팔았는지를 따져 사후에 가려진다. 거래가 이뤄지는 순간에 이를 막는 사전 장치는 거래소 가이드라인 수준이었다.
투자자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어느 회사가 헤지를 맡는지, 평가일에 얼마를 팔았는지는 설명서에 나오지 않는다.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2014년 12월 30일 자본시장법이 개정돼 제178조의2 시장질서 교란행위 조항이 신설됐고 2015년 7월 1일 시행됐다. 시세조종의 목적을 입증하지 못해도 시세에 부당한 영향을 주는 행위를 과징금으로 제재할 수 있게 됐다. 금융감독원은 이 유형을 불공정거래 조사 사례집에 별도 항목으로 정리했다.
ELS 헤지거래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져 평가일 매도 규모와 방식에 기준이 생겼다. 대법원이 BNP파리바 사건에서 투자자 패소로 판단한 근거도 이 가이드라인 요건 충족 여부였다.
가이드라인은 법률이 아니라 자율규제다. 평가일에 기초자산을 얼마까지 팔 수 있는지 법률로 정한 상한은 없다. 누가 헤지를 운용하는지, 평가일에 얼마를 팔았는지를 투자자에게 알리는 공시 의무도 없다. 결국 손실을 본 뒤 소송으로 다투는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최종 부담투자자·시장가격·신뢰
04 · 국민 행동수칙
확인 · 대응 · 신고
ELS에 이미 가입했거나 가입을 검토하는 사람이 평가일 전후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다.
지금 확인할 것
- 투자설명서와 핵심설명서에서 평가일 날짜, 기준가격, 상환 기준선 비율을 숫자로 적어 둔다. 상환 여부는 그날 종가 하나로 결정된다.
- 기초자산이 개별 종목인지 주가지수인지 확인한다. 개별 종목은 거래량이 적을수록 소수 주문에 종가가 흔들린다. 지수형은 개별 종목보다 이런 영향이 작다.
- 평가일 당일 기초자산의 종가와 마감 직전 거래량을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data.krx.co.kr)에서 확인해 둔다. 나중에 다툴 때 근거가 된다.
- 금융투자협회 전자공시서비스(dis.kofia.or.kr)에서 해당 ELS의 발행 조건과 상환 내역을 확인한다.
일이 생겼을 때
- 상환이 근소한 차이로 무산됐다면 평가일 시간대별 체결 내역을 확보한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제28조 제3항에 따라 금융회사가 가진 자료의 열람을 요구할 수 있다.
- 발행사나 헤지 운용사의 매도가 상환을 막았다고 볼 사정이 있으면 민법 제150조 제1항의 조건 성취 방해를 주장할 수 있다. 법원이 실제로 이 조항을 적용해 상환금 지급을 명한 사례가 있다.
-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를 확인한다. 불법행위는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 행위가 있은 날부터 10년이다.
어디에 신고하나
- 금융감독원 1332 또는 e-금융민원센터(fcsc.kr)에 분쟁조정을 신청한다.
- 시세조종 의심은 금융감독원 증권불공정거래 신고센터(cybercop.fss.or.kr)에 신고한다.
- 금융소비자정보포털 파인(fine.fss.or.kr)에서 해당 금융회사의 제재 이력과 민원 건수를 확인한다.
답하기 어렵거나 확인되지 않은 항목이 있으면 결정을 미룹니다.
- 01
이 상품의 상환이 결정되는 날이 언제이고 그날 기준선이 얼마인지 숫자로 답할 수 있는가.
- 02
기초자산이 하루 거래량이 적은 개별 종목은 아닌가.
- 03
이 상품의 헤지를 누가 운용하는지 설명서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 04
'지금까지 조기상환이 잘 됐다'는 설명만 듣고 있지 않은가. 과거 상환 실적은 다음 평가일과 무관하다.
- 05
상환이 무산됐을 때 그 원인을 확인할 방법이 나에게 있는가.
상설 확인 창구
- 금융민원·분쟁조정금융감독원 1332 · fcsc.kr
- 내 계좌 조회·일괄 지급정지어카운트인포 payinfo.or.kr
- 내 명의 휴대전화 조회엠세이퍼 msafer.or.kr
- 내 보험 전체 조회내보험 찾아줌 cont.insure.or.kr
- 기업 공시 확인전자공시시스템 dart.fss.or.kr
- 금융소비자 정보포털파인 fine.fss.or.kr
05 · 필자의 결론
이 사건들이 남긴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상품을 만든 쪽이 그 상품의 결과를 결정하는 가격에 직접 손을 댈 수 있다는 사실이 법정에서 확인됐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그 행위가 위법인지가 매도 시점과 수량, 호가 방식이라는 사후 판단에 맡겨져 있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델타헤지 자체를 금지하지 않았다. 다만 상환 조건 성취 여부에 영향을 주는 시점에는 투자자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이 기준은 옳지만 개인 투자자가 스스로 확인할 수 없는 기준이다. 판결이 나오기까지 첫 소송에서 10년이 걸렸다. 그 사이 같은 구조의 상품은 계속 팔렸다. 평가일에 누가 얼마를 팔았는지를 사후에라도 공시하게 하는 것이 다음 순서다. 결과를 정하는 가격에 손을 댈 수 있는 쪽이 있다면, 그 손이 언제 무엇을 했는지는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
이 사건과 관련된 금융상품
06 · 근거 자료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자료
독자가 판단의 근거를 직접 추적할 수 있도록 감독당국 발표, 판결, 공시와 연구자료를 제시한다. 사실관계 기준일은 2026.08.06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