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 핵심 요약 · 90초
상장회사가 나쁜 소식을 언제 알리느냐는 규정으로 정해져 있다. 이 사건은 그 규정에 적혀 있지 않은 몇 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그 몇 시간의 손해를 누가 물어주는지를 법원이 처음으로 판단한 사건이다.
2016년 9월 29일 오후 4시 33분 한미약품은 미국 제넨텍과 1조원 규모 항암제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다고 공시했다. 같은 날 오후 7시 6분 이 회사는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폐암 신약 올무티닙의 기술수출 계약을 해지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해지 공시는 다음 날인 9월 30일 오전 9시 29분에 나왔다. 통보를 받은 뒤 약 14시간, 장이 열린 뒤 29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호재 공시 다음 날 한미약품 주가는 전일 대비 5.5% 오른 상태로 출발했다가, 악재 공시가 나온 뒤 종가 기준 18.1% 떨어졌다. 2016년 한 해 주가는 57% 내렸고 시가총액은 4조 2,000억원 줄었다. 해지된 계약은 2015년 7월 체결한 7억 3,000만 달러, 원화 약 8,000억원 규모였다.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2016년 12월 13일 이 정보를 미리 알고 주식을 매매해 33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45명을 적발했다. 이 가운데 17명이 재판에 넘겨졌고 4명은 구속기소됐다.
이 사건 이후 기술이전과 특허권 관련 정보는 자율공시에서 당일 의무공시로 바뀌었다. 그러나 제약바이오 업종의 공시 지연 문제는 계속되고 있다. 한미약품 자신도 2023년 8월 비만 치료제 임상 3상 신청을 늦게 공시해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예고를 받았다. 임상 결과와 기술수출 계약은 주가에 즉시 영향을 주는 정보인데, 그 정보가 회사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먼저 도는지를 확인할 방법은 여전히 투자자에게 없다.
02 · 자세한 이야기
사건은 이렇게 전개됐다
약 8분03 · 금융구조
돈·정보·책임은 어떻게 움직였나
공시는 회사가 가진 정보를 모든 투자자에게 동시에 알리는 제도다. 이 동시성이 깨지면 먼저 안 사람과 나중에 안 사람 사이에 돈이 이동한다.
회사가 정보를 먼저 안다
계약 해지 통보는 상대 회사에서 담당 부서로, 담당 부서에서 경영진과 법무·재무 부서로 전달된다. 이 과정에서 정보를 아는 사람이 늘어난다. 이 사건에서는 45명이 공시 전에 이 정보를 이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시 시점을 회사가 정한다
당시 기술이전 계약 관련 사항은 의무공시가 아닌 자율공시였다. 자율공시는 사유 발생 다음 날까지 하면 됐다. 언제 공시할지를 회사가 정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호재를 장 마감 뒤에, 악재를 다음 날 개장 뒤에 내보내는 순서도 회사가 정했다.
→그 사이에 거래가 이뤄진다
호재 공시를 보고 들어온 매수 주문이 개장 직후 29분간 체결됐다. 정보를 미리 안 사람의 매도 주문도 같은 시간에 체결됐다. 매도한 쪽의 손실 회피액이 매수한 쪽의 손실이 된다.
→손해는 사후에 일부만 회복된다
형사처벌은 정보를 이용한 개인에게 내려졌고, 부당이득 33억원 가운데 얼마가 환수됐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민사에서 확정된 배상액은 청구액의 약 70%인 10억원이었다. 그날 사라진 시가총액과 비교하면 극히 일부다.
왜 이런 일이 가능했나
제도의 빈틈이 명확했다. 기술이전이나 계약 해지 같은 정보는 제약바이오 회사의 주가를 좌우하는데도 자율공시 항목이었다. 자율공시는 제출 기한이 다음 날까지였다. 회사가 그 기한을 지키기만 하면 시점을 고를 수 있었다.
공시 위반에 대한 제재도 약했다. 당시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더라도 과태료와 벌점이 부과될 뿐이었고, 제재금 상한은 유가증권시장 2억원, 코스닥시장 1억원이었다. 하루 만에 4조원 가까운 시가총액이 움직이는 사건에 비하면 작은 금액이다.
내부 정보 관리 체계도 문제였다.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저녁부터 공시 전까지, 회사 내부와 관계사에서 이 정보가 어떻게 퍼졌는지를 통제하는 절차가 작동하지 않았다. 45명이라는 숫자가 그 결과다.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금융위원회는 2016년 11월 10일 공매도 및 공시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기술이전과 특허권 관련 주요 사항을 자율공시에서 당일 의무공시로 전환하고, 자율공시 사항을 정정할 때의 제출 기한을 다음 날에서 당일로 단축했다. 공시위반 제재금 상한은 유가증권시장 2억원에서 10억원으로, 코스닥시장 1억원에서 5억원으로 올렸다. 공매도 과열종목 지정제도 이때 신설됐다. 대부분 2017년부터 시행됐다.
2017년 4월 코스닥시장본부는 불성실공시법인 제재를 강화했다. 1년에 세 차례 이상 고의로 불성실공시를 하면 세 번째 지정 때 제재금을 가중하는 내용이다. 정정공시 시한도 사유 발생 당일로 단축했다.
제재금 상한은 2023년에 벌점 1점당 3,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다시 낮아졌다. 회사가 공시 전 정보를 몇 명이 알고 있었는지를 사후에 확인할 방법은 여전히 수사에 의존한다. 지연공시로 손해를 본 투자자가 배상을 받으려면 개별적으로 소송을 내야 하며, 이 사건에서 확정까지 5년 이상 걸렸다.
최종 부담투자자·시장가격·신뢰
04 · 국민 행동수칙
확인 · 대응 · 신고
공시는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언제 어떻게 보느냐다.
지금 확인할 것
- 전자공시시스템 DART(dart.fss.or.kr)에서 관심 종목을 즐겨찾기에 등록하고 공시 알림을 설정한다. 공시 제출 시각이 분 단위로 기록돼 있으므로 장중인지 장 마감 뒤인지 확인할 수 있다.
- 한국거래소 상장공시시스템 KIND(kind.krx.co.kr)에서 그 회사가 최근 1년간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 적이 있는지 확인한다. 누적 벌점이 15점을 넘으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 기술수출 계약 공시를 볼 때는 총 계약금액이 아니라 계약금과 단계별 기술료를 나눠서 본다. 계약금만 실제로 받은 돈이고 나머지는 개발 단계마다 조건을 충족해야 받는다.
- 장 마감 직후에 좋은 소식이 공시되면 다음 날 개장까지 다른 공시가 없는지 확인한다. 순서를 확인하지 않고 개장 직후에 매수하는 것이 이 사건에서 가장 큰 손실을 만들었다.
일이 생겼을 때
- 공시 지연이나 허위 공시로 손해를 봤다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162조에 따라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사업보고서 등의 거짓 기재나 기재 누락이 대상이다.
- 미공개중요정보 이용 행위는 같은 법 제174조 위반이다. 위반한 사람은 그 매매로 손해를 입은 투자자에게 배상할 책임을 진다.
- 청구는 그 사실을 안 날부터 1년, 해당 공시 제출일부터 3년 안에 해야 한다. 기한을 넘기면 청구권이 사라진다.
- 피해자가 50명 이상이면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에 따른 집단소송을 검토한다. 법원의 소송 허가 결정을 먼저 받아야 한다.
어디에 신고하나
- 금융감독원 1332로 상담하거나 e-금융민원센터(fcsc.kr)에 민원을 접수한다.
- 불공정거래 의심 사항은 금융감독원 홈페이지(fss.or.kr)의 증권 불공정거래 신고 창구로 접수한다. 확인되면 포상금이 지급될 수 있다.
- 공시 위반은 한국거래소 상장공시시스템(kind.krx.co.kr)에 공개된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내역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답하기 어렵거나 확인되지 않은 항목이 있으면 결정을 미룹니다.
- 01
좋은 소식이 장 마감 뒤에, 나쁜 소식이 다음 날 개장 뒤에 나오고 있지 않은가.
- 02
계약 총액만 강조하고 계약금이 얼마인지 밝히지 않은 공시를 보고 있지 않은가.
- 03
그 회사가 최근 1년간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 적이 있는지 확인했는가.
- 04
공시가 나오기 전날부터 거래량이 평소보다 크게 늘어나지 않았는가.
- 05
임상시험 결과나 계약 관련 소식을 공시가 아닌 다른 경로로 먼저 들었다면, 그 정보로 매매하는 것이 위법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상설 확인 창구
- 금융민원·분쟁조정금융감독원 1332 · fcsc.kr
- 내 계좌 조회·일괄 지급정지어카운트인포 payinfo.or.kr
- 내 명의 휴대전화 조회엠세이퍼 msafer.or.kr
- 내 보험 전체 조회내보험 찾아줌 cont.insure.or.kr
- 기업 공시 확인전자공시시스템 dart.fss.or.kr
- 금융소비자 정보포털파인 fine.fss.or.kr
05 · 필자의 결론
이 사건에서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은 정보를 미리 알고 주식을 판 개인들이다. 공시를 늦춘 결정 자체에 대해서는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 검찰의 결론이었다. 그 대신 대법원은 민사에서 지연공시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규정을 지켰다는 말이 손해를 만들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확정된 배상액 10억원은 그날 사라진 금액에 비하면 작다. 그러나 이 판결 뒤로 상장회사는 공시 시점을 고르는 일에 법적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문제는 그 책임을 묻기까지 개인투자자가 5년을 소송해야 했다는 점이다.
06 · 근거 자료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자료
독자가 판단의 근거를 직접 추적할 수 있도록 감독당국 발표, 판결, 공시와 연구자료를 제시한다. 사실관계 기준일은 2026.08.06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