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 핵심 요약 · 90초
은행에서 돈을 빌린 기업에 은행 지주회사 주식을 사달라고 하면 그 기업은 거절할 수 있는가. 2016년 1월 부산은행의 여신거래업체 14곳이 사흘 동안 173억원어치를 샀다. 대법원은 이를 시세조종으로 판단했다.
BNK금융지주는 2015년 11월 7,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공시 뒤 주가가 20% 넘게 떨어졌다. 신주 발행가격은 시장 주가를 기준으로 정해지므로 주가가 낮으면 조달액이 줄거나 발행 주식이 늘어난다. 성세환 당시 회장 등은 2015년 12월 주가부양방안을 세웠고, 2016년 1월 자회사인 부산은행의 여신거래업체를 통해 주식을 사들이게 했다.
금융감독원 제재 공개안에 따르면 동원된 곳은 부산은행과 여신거래 관계에 있는 14개 업체다. 2016년 1월 유상증자 발행가 산정기간에 이들이 매수한 주식은 189만 8,909주, 금액으로 약 173억원이다. 이 가운데 고가매수 주문이 71만 8,773주, 매도 물량을 소진시키는 주문이 111만 8,411주, 종가에 관여한 주문이 5만 9,725주였다. 주가는 8,000원에서 8,330원으로 올랐다. 부산지방검찰청은 2017년 5월 1일 성세환 전 회장 등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했다.
형사 절차는 2020년에 끝났다. 부산고등법원 형사2부는 2020년 2월 5일 항소심에서 징역 2년과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고 성세환 전 회장은 법정에서 재구속됐다. 대법원 2부는 2020년 5월 28일 상고를 기각해 형을 확정했다. 다만 이 형량에는 부산시 공무원 자녀를 부산은행에 부정 채용시킨 뇌물공여 혐의가 함께 포함돼 있다. 감독 제재는 훨씬 늦게 나왔다. 금융감독원은 2024년 7월에야 BNK금융지주와 부산은행에 기관경고를 내리고 임직원 19명을 제재했다. 기관경고를 받으면 1년 동안 금융당국 인허가가 필요한 신규 사업에 진출할 수 없다.
02 · 자세한 이야기
사건은 이렇게 전개됐다
약 8분03 · 금융구조
돈·정보·책임은 어떻게 움직였나
유상증자에서 주가는 단순한 시세가 아니라 회사가 받게 될 돈의 크기를 정하는 숫자다.
발행가격이 주가로 정해진다
유상증자에서 새로 찍는 주식의 가격은 정해진 기간의 시장 주가를 기준으로 산정된다. 주가가 낮으면 발행가격이 낮아진다. 같은 금액을 조달하려면 주식을 더 많이 찍어야 하고, 기존 주주의 지분은 그만큼 희석된다.
→산정기간이 표적이 된다
발행가격을 정하는 기간이 며칠로 정해져 있으면 그 며칠간의 주가만 올리면 된다. 2016년 1월 매수가 이 기간에 집중된 이유다.
→여신 관계가 지렛대가 된다
돈을 빌려준 은행이 요청하면 기업은 거절하기 어렵다. 만기 연장, 금리, 추가 대출이 모두 은행 판단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명시적 강요가 없어도 요청 자체가 압력으로 작동한다.
→주문 유형이 세 갈래로 나뉜다
시장가보다 높은 값을 부르는 고가매수, 팔려고 나온 물량을 받아내 하락을 막는 물량소진, 마감 가격에 영향을 주는 종가관여다. 이 세 가지가 함께 쓰이면 하루 종일 가격이 관리된다.
왜 이런 일이 가능했나
지주회사 경영진과 일반 주주의 이해가 갈렸다. 발행가격이 높으면 회사는 같은 주식으로 더 많은 돈을 받는다. 그러나 그 가격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그 가격에 산 투자자는 손해를 본다. 시세조종이 자본시장법으로 금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은행과 대출 기업의 관계는 대등하지 않다. 여신거래업체는 만기, 금리, 한도를 은행에 의존한다. 이 관계에서 주식 매수 요청을 거절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 판결이 인정한 것은 이 비대칭이었다.
감독 절차가 형사 절차와 따로 움직였다. 대법원 확정은 2020년 5월인데 기관 제재는 2024년 7월에 나왔다. 그 사이 회사는 아무 제약 없이 영업했고, 제재를 받은 시점의 경영진은 행위 당시 경영진과 달랐다.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금융감독원은 2024년 7월 BNK금융지주와 부산은행에 기관경고를, 임직원 19명에게 해임권고·정직·감봉·견책 등을 조치했다. 기관경고를 받으면 1년간 금융당국 인허가가 필요한 신규 사업에 진출할 수 없다.
형사 확정에서 기관 제재까지 4년, 행위 시점부터는 8년 반이 걸렸다. 제재가 늦으면 억지 효과가 떨어지고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이미 회사를 떠난 뒤가 된다. 제재 절차의 소요 기간 자체가 제도의 문제로 남아 있다.
2023년 이후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불공정거래에 대한 과징금 제도와 부당이득 산정 기준이 도입됐다. 이 사건 당시에는 형사처벌과 기관 제재 외에 금전적 환수 수단이 사실상 없었다.
최종 부담투자자·시장가격·신뢰
04 · 국민 행동수칙
확인 · 대응 · 신고
유상증자에 참여하거나 증자를 앞둔 종목을 사려는 투자자가 공시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다.
지금 확인할 것
- 유상증자 결정 공시와 증권신고서를 전자공시시스템 DART(dart.fss.or.kr)에서 확인한다. 발행가격 산정 방식과 산정 기준일이 적혀 있다.
- 발행가 산정기간의 거래량과 주가 흐름을 확인한다. 특정 며칠에만 거래량이 급증했다면 그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
- 증자 자금의 사용 목적을 증권신고서에서 확인한다. 시설자금, 운영자금, 채무상환 중 어디에 쓰이는지 기재된다.
- 상장법인의 주요 공시는 한국거래소 KIND(kind.krx.co.kr)에서도 조회할 수 있다.
- 거래하는 은행에서 특정 종목의 매수를 권유받았다면 그 요청의 근거를 문서로 남긴다.
일이 생겼을 때
- 시세조종이 의심되면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 또는 금융감독원에 신고한다. 자본시장법은 불공정거래 신고자에 대한 포상금 제도를 두고 있다.
- 시세조종으로 손해를 입은 투자자는 자본시장법 제177조에 따라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위반행위가 있었던 사실을 안 때부터 2년, 행위가 있었던 때부터 5년의 기간 제한이 있다.
- 대출 거래처가 은행으로부터 주식 매수를 요청받았다면 그 사실 자체를 기록하고 금융감독원에 제보한다. 이 사건에서 인정된 것이 그 관계의 압력이었다.
- 형사 판결이 확정된 사건은 판결문 열람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대법원 판결서 인터넷열람 서비스를 이용한다.
어디에 신고하나
- 금융감독원 1332, e-금융민원센터 fcsc.kr.
-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 불공정거래 신고. 한국거래소 민원 창구 minwon.krx.co.kr.
- 금융회사 임직원의 부당한 요구는 금융감독원에 제보한다.
답하기 어렵거나 확인되지 않은 항목이 있으면 결정을 미룹니다.
- 01
유상증자 공시 이후 발행가 산정기간에만 거래량이 갑자기 늘지 않았는가.
- 02
회사와 거래관계가 있는 곳들이 같은 시기에 그 회사 주식을 사고 있지 않은가.
- 03
장 마감 직전에 가격이 반복해서 밀어 올려지는 흐름이 보이지 않는가.
- 04
거래하는 금융회사로부터 특정 주식을 사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지 않은가.
- 05
증자 자금의 사용 목적이 증권신고서에 구체적으로 적혀 있는가.
상설 확인 창구
- 금융민원·분쟁조정금융감독원 1332 · fcsc.kr
- 내 계좌 조회·일괄 지급정지어카운트인포 payinfo.or.kr
- 내 명의 휴대전화 조회엠세이퍼 msafer.or.kr
- 내 보험 전체 조회내보험 찾아줌 cont.insure.or.kr
- 기업 공시 확인전자공시시스템 dart.fss.or.kr
- 금융소비자 정보포털파인 fine.fss.or.kr
05 · 필자의 결론
이 사건이 남긴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은행의 여신 관계는 그 자체로 압력이 된다는 사실이 판결로 확인됐다. 돈을 빌린 기업에 무엇을 부탁하는 행위는 부탁이 아니다. 둘째, 금융회사에 대한 제재가 얼마나 늦을 수 있는지가 드러났다. 행위는 2016년 1월, 형사 확정은 2020년 5월, 기관 제재는 2024년 7월이다. 8년 반이다. 제재가 늦으면 회사는 그 기간 동안 정상적으로 영업하고, 책임을 물을 사람은 이미 떠나 있다. 남은 것은 벌금 2억 5,000만원과 1년간의 신사업 제한이다. 7,000억원 규모의 자본조달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주가와 견줄 만한 크기인지는 따져볼 문제다.
06 · 근거 자료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자료
독자가 판단의 근거를 직접 추적할 수 있도록 감독당국 발표, 판결, 공시와 연구자료를 제시한다. 사실관계 기준일은 2026.08.06이다.